[언론보도_시장경제신문] '니 죄를 니가 알렸다' 식?... STX 분식회계, 증선위 '원님 의결' 논란
2026.02.11
'니 죄를 니가 알렸다' 식?... STX 분식회계, 증선위 '원님 의결' 논란
- 증선위, 'STX 고의 분식 의결' 절차적 정당성 도마
- 자회사-이라크 협력사 소송, '충당부채 누락' 원인
- 이라크 기업, 소송가액 수십배 부풀려 그대로 인용
- 회계감리 절차, 금감원 주도... 보고서, 기업 못 봐
- 고의분식 근거 모호... "심증이 영향주면 안 돼"
- 소명기회 극히 제한적, 서류도 금감원 거쳐 제출
- 증선위 의결로 주식거래 정지... 개미 5만명 재산 피해

STX 본사 사옥. 제공=STX
지난해 7월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의 '㈜STX 고의 분식회계 의결'을 두고, 방어권 침해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회계감리 조사를 사실상 주도한 금감원의 권한은 ‘무소불위’에 가까울만큼 강력하지만 피심인 위치에 있던 STX는 충분한 항변 기회를 보장받지 못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이 같은 구조적 문제는 STX에 투자한 5만여명의 소수주주 피해로 확산될 수 있는 만큼, 신중한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견해가 힘을 얻고 있다.
증선위는, 회계처리기준을 위반해 재무제표를 작성·공시했다며 STX와 자회사 STX마린서비스(이하 STX마린)에 대해 과징금 부과, 감사인 지정 3년, 대표이사 해임권고 및 직무정지 6개월, 검찰 통보 등 중징계를 의결했다.
자회사 STX마린과 해외(이라크) 협력사간 소송에 따른 '충당부채 미반영'이 주요 근거였다. STX가 해운·물류 부문(STX그린로지스) 인적분할을 잡음없이 마무리하기 위해, 위 소송 건을 고의 은폐했다는 것이 증선위 판단이다. 증선위는 금감원 회계감리 결과를 반영해 이같은 결론을 내렸다.
회계감리에 관한 금감원 조사와 증권선물위원회 의결은 '속도'가 우선시 되는 행정심판 절차에 준하므로, 사법부의 재판과 같은 충분한 방어권을 기대하는 건 제도의 기본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반론도 있다. 그러나 특정 기업이 고의 혹은 중과실로 분식회계를 했는지 여부를 주로 살피는 회계감리 절차에 있어, 금감원 조사와 증선위 의결의 실질적 영향력은 다른 행정심판과 비교 자체가 안 된다.
증선위의 확정된 의결은 물론이고 사전 절차인 금감원 회계감리 결과만으로도 주식시장과 금융권은 즉각 반응을 하기 때문이다. 분식회계 여부에 대한 금감원 조사 결과가 고의 혹은 중과실에 무게를 두고 있다면, 당해 기업에 대한 신규 금융거래 중단과 기존 대출금 회수, 주가 폭락은 예정된 수순이다. 대외신인도 급락과 그에 따른 수출계약 차질, 매출 하락 등도 불가피하다.
이런 사정을 고려할 때 적어도 회계감리에 관한 금감원 조사와 증선위 의결은 기존의 다른 행정심판과 달리, 법원의 재판절차 못지 않은 방어권이 보장된 상태에서 이뤄져야 한다.
STX 분식회계 의혹 사건의 경우, 자회사가 '소송 중인 사건'을 사업보고서에 기재하지 않은 사실이 확인되면서 시작됐다. 금감원과 증선위는 '소송 중인 사건' 누락을 고의로 봤다. 이를 통해 관련 부채 규모를 축소 은폐했다는 것이다. 증선위 분식 의결로 상장기업인 STX의 주식거래는 정지됐다.
문제는 고의 회계분식 의결 과정에서 피심인인 STX가 방어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특히 복수의 회계감리 전문가들에 대한 교차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고의 분식 의결을 뒷받침하는 구체적 증거가 모호하다는 의견이 상당하다. 조사를 주도한 금감원의 '심증'이 증선위 의결에 중대한 영향을 줬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기업을 도산 위기로 내모는 금감원 조사와 증선위 의결의 파급력을 생각한다면, 조사자의 예단이 의결에 영향을 줄만한 절차적 맹점은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 STX 회계분식 사건 관련 금감원 조사 과정을 다시 들여다 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ㅣ금감원의 STX 고의 분식 판단... 구체적 증거 없어
증선위는 STX에 대한 ‘고의 분식회계’ 판단을 내린 근거로 ①인적분할 ②자회사 STX마린 매각 ③박상준 STX 대표의 STX마린 대표 겸직 ④박 대표가 직원에게 보낸 이메일 등을 들고 있다.
최대주주인 사모펀드 APC머큐리가 투자금 회수를 목적으로 STX마린의 IPO와 STX 인적분할을 추진했고, 이 과정에서 거래소의 원활한 심사를 위해 소송 관련 내역을 고의 누락했다는 것이다. 박상준 대표가 STX마린 대표를 겸직하며 소송 사실 은폐를 지시했다는 시각도 있다.
지난해 7월 증선위는 제재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STX는 2022년부터 2023년 1분기까지 재무제표에서 자회사인 STX마린과 이라크 현지 협력사 간 소송에 따른 충당부채를 반영하지 않았다. STX는 1372억원에 달하는 소송가액을 공시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누락했다."
증선위 판단에 대해 회계감리 전문가들은 "결정적인 ‘스모킹건’이 없다"는 의견을 냈다. STX가 고의로 분식회계를 실행, 은폐하려 한 것으로 단정짓기에는 증선위가 제시한 근거들의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STX의 최대주주인 APC머큐리가 투자금을 회수하려 했다는 ‘프레임’을 먼저 설정하고, 각 사실관계를 사후에 꿰맞추는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에서, 논리적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무엇보다 분식회계의 ‘고의성’을 입증하는 근거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데 전문가들의 의견은 대체로 일치했다. 증선위는 박 대표가 2023년 4월경 직원에게 이라크 소송 관련 대응을 지시한 이메일을 ‘은폐 지시’의 증거로 내세웠다. 이에 대해서는 "해당 이메일 어디에도 은폐를 교사하거나 공모하는 내용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반론이 존재한다.
STX의 인적분할 역시, 불법적 의도가 있었다고 섣불리 단정하기 어렵다. STX 측은 “사업부문 분리와 전문성 강화를 통해 종합무역상사로서 정체성을 명확히 하기 위한 장기경영 계획의 일환”이라는 입장이다. STX는 종합무역업에, STX그린로지스는 해운물류 사업에 각각 집중하기 위한 경영적 판단으로 인적분할을 추진했다는 해명이다.

사진=금융감독원
ㅣ"이라크 기업, 소송가액 수십배 부불려"... 금감원·증선위 그대로 인용
STX측은 당시 STX마린으로부터 해당 소송 관련 내용을 공유받지 못해 발생한 '실수'라고 항변했다.
당초 이 사건의 발단은 STX마린과 이라크 협력사 카람 간 분쟁에서 비롯됐다. STX마린은 2017년부터 이라크 디젤발전사업을 위해 현지 협력사인 카람과 윤활유 및 인력 등에 대한 계약을 맺고 사업을 진행했다.
다음은 소송 관련 회사 관계자의 부연 설명이다.
"카람이 저품질의 윤활유를 공급하고, 인건비를 체불하는 등 불성실한 태도로 계약을 이행하지 않아, STX마린은 카람을 상대로 계약해지 및 손해배상 소송을 이라크 법원에 냈다. 이에 카람도 STX마린을 상대로 다수의 맞소송을 제기했다."
위 ‘이라크 소송’ 사건에서 주의깊게 들여다 봐야 할 대목은, 카람 측의 소송가액 부풀리기이다. 일례로 인건비 소송의 경우, 카람은 '예상일실이익'의 15배인 260억원을 손해배상액으로 산정했다. 윤활유 소송에선 무려 33배인 684억원을 청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둘 사이에 제기된 소송 건은 모두 5개이다.
STX마린과 카람 사이의 윤활유 소송과 수표금 지급 소송 1심은 모두 STX마린이 승소했지만, 인건비 소송은 1심에서 패소했다. 회사는 3심에서 패소가 확정된 대금지급 소송과 합의로 종결된 폰시안 소송의 경우, 재무제표에 확정 부채로 계상했다. 회사 관계자는 "5건의 소송을 모두 합치면, 카람이 청구한 손해배상액 1372억원은 실제와 비교할 때 114배 가량 더 많다"고 주장했다.
각 소송의 시점을 보면, STX마린이 윤활유·수표금 지급 소송에서 승소한 날짜는 2022년 1월과 2월이었다. 연결재무제표 발행 승인일 기준으로 STX마린이 '자원 유출 가능성'을 희박하게 판단한 것을 두고, 회계기준 위반으로 몰아가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해석이 있다.
STX는 계열사인 STX마린이 이라크 소송건을 공유하지 않아 연결재무제표에 기재되지 않은 것일 뿐, 고의로 은폐하려는 목적은 없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해당 소송건은 이라크 현지 법무법인이 맡아 진행 중인 소송건인데다, STX 법무 인력이 단 3명에 불과해 현실적 어려움이 있었다고 회사 측은 부연했다.
해당 사안에 정통한 업계 관계자는 "카람 측의 소송가액 부풀리기 정황이 분명한데도 금감원과 증선위가 위 가액을 모두 부채로 보고, 고의 분식 처분을 내렸다는 사실은 국익 면에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ㅣ"네 죄를 네가 알렸다"식 의결... 부족한 기업 소명절차
증선위의 제재 의결에 따라, 지난해 7월부터 STX 주식거래가 정지되면서 이 회사 주식을 산 개인투자자 5만여명은 재산 피해가 불가피하게 됐다. ‘주주보호’를 명분으로 하는 회계감리 절차가 되레 소수주주 재산권 행사를 가로막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피심 기업 방어권 침해 논란의 정점에는, 금감원이 증선위에 제출하는 '감리결과 보고서'의 비공개 원칙이 있다. 현행법상 감리 보고서는 수사 기밀 유지와 영업비밀 보호를 이유로 피조사자에게 공개되지 않는다. 피심 기업은 내용이 요약된 '조치사전통지서'만 보고 반박문을 써야 한다. 정보 접근이 차단돼 있으니 '깜깜이 방어' 밖에 할 수가 없다.
절차적 불균형도 문제다. 금감원은 조사 기간 내내 증선위 실무진과 소통하며 논리를 다질 수 있는 반면, 기업은 감리위원회나 증선위 심의 단계에서 '대심제'를 통해 딱 한 번 출석 기회를 얻는다. 그마저도 1~2시간의 짧은 시간 안에 수년치 회계 쟁점을 모두 설명해야 한다.
다행히 최근 법원의 태도는 주목할만하다. 최근 법원은 금감원과 증선위 조사 과정에서의 '절차적 정당성'을 더욱 엄격하게 따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대법원 판례(2011다29321 등) 취지에 따라, 처분의 근거를 명확히 제시하지 않거나 핵심 자료의 열람권을 과도하게 제한한 경우, 회계 부정 여부와 상관없이 처분 자체를 취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최근 효력정지 가처분(집행정지) 사건에서도 법원은 기업 경영진의 해임권고 등을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로 보고, 기업 측 이의 신청을 폭넓게 인용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서울행정법원은 “STX가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을 수 있는 만큼, 일부 효력을 정지할 긴급한 필요가 있다”며 회사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이에 따라, 이 사건 본안 판결까지 박상준 대표에 대한 해임 권고 및 6개월 직무정지, 회계장부·재무제표 지적사항 반영 등의 제재는 효력이 정지된 상태다.
전문가들은 근본적 해결을 위해선 ▲감리 보고서의 공개 확대 ▲조사와 심의 지원 부서의 완전 분리 ▲상시 대심제 도입 등 보다 과감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금감원 관계자는 “진술 기회가 부족하다는 부분은 피조치자 입장에선 그렇게 느낄 수는 있을 것 같다"면서도 "금감원은 기업이 대심제를 신청하면 받아주고 있고, 감리위 의견 진술 내용을 증선위에서도 기술할 수 있게 열려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위 안건소위도 운영하는 등 기업에 충분한 의견 진술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고 답했다.
26.02.10 시장경제신문 최종희, 유경표 기자 yukp@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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